by Rev. Dr. Meredith J. Sprunger
여러 해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사람들이 “유란시아 서”에 관하여 알고 싶어하는 첫 번째 질문은 누가 그것을 썼느냐 하는 것이다. 어떤 환경에서 그것이 기원(起源)되었는가? 그들에게 저자가 누구인지를 가지고 판단하지 말고 그 내용으로 판단하라고 대답하였지만 거의 소용이 없었다. 우리가 처한 문화적 상황 때문에, 어떤 출판물을 평가할 때 우리는 자연히 그 자료들과 권위에 의존하려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특별히, 종교적인 문헌은 이러한 방법에 더욱 의존한다.
계시적인 권위를 주장하는 각 개인들이나 집단들 또는 문헌의 확실성에는 항상 의문의 여지가 있다. 권위는 진리에 대한 철학적 표준이 될 수 없다. 이러한 질문을 해결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먼저, 평가되는 물질적 존재의 특성을 기초로 하여 개인적인 판단이 내려질 수 있다. 계시의 확실성이 확립되는 다른 방법은 오랜 세월에 걸친 역사적인 경험을 통하여 공동체가 내리는 평가이다. 사회 전통은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루돌프 불트만 같은 성경학자가 우리들의 믿을만한 역사적 지식들이 너무 미약하기 때문에 “예수의 생애와 인격에 대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주장하였을 때에도,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이 말로 인하여 갈등을 겪었던 것이다. 우리들의 역사적 경험은 신약성경의 진실성을 사회적으로 입증하였다.
현재 “유란시아 서”와 관련된 사회적 전통은 전혀 없다. 이 책은 그 내용의 진실성에 의해서 분석되고 평가되어야만 한다. “유란시아 서”의 진실성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타당성은 거의 없지만, 그 기원에 관계되는 두 가지의 자료 원천이 있다.
저자(著者)의 답변
“유란시아 서”의 기원에 대한 첫 번째 답변이 이 책 속에 들어있다. 우리는 그 문서들이 높은 신격(神格) 권위자들에 의해서 공인되었고 여러 명의 초인간적 인격체들에 의해서 기록되었다고 들었다. 이 문서들은 우리가 살고있는 행성인 유란시아에 다섯 번째의 새로운 시대적 계시로 주어졌다. 서기 1934년 현재 다섯 번의 새로운 시대적 계시(Epochal Revelation)는 다음과 같다:
․달라마시아 500,000년 전
․아담과 이브 37,848년 전
․멜기세덱 1980 B.C.
․예수 7 B.C.
․유란시아 서 1934-1935 A.D.
저자들(계시자들)은 시간 세계의 언어로 영원 세계의 실체들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의 어려움을 시인한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게 나눠줄 수 있는 지식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고 들었다. 그들은 설명하기를, 시공간(視空間) 세계의 모든 계시는 부분적이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행성의 발전 과정 속에서 주기적으로 증진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저자들은 자신들의 우주적인 영적 차원과 필사적(必死的)존재인 우리들의 물질적 차원 사이에서 대화하는 가운데 부딪힌 문제들을 일반적인 용어들을 사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사는 세계에 있는 특정한 인간의 사고(思考) 조율사(하나님의 내주하는 영)를 통하여 접촉하였음을 보여준다. 아무튼 우리가 확신하는 것은, 이 사고 조율사의 대화 기술(技術)이 “심령술”이나 “영매(靈媒)” 또는 “초월적 대화술”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유란시아 서”의 다음과 같은 부분들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1:1-2, 16:8, 17:1-2,
32:2, 33:3, 215:2-9, 865:2,6,7, 1008:1-3, 1109:3-9, 1110:1-13, 1111:1-4, 1208:7, 1209:1, 1258:1, 1343:1
인간적인 이야기
“유란시아 서”의 기원과 관련된 두 번째 자료 원천은 인간적인 측면의 이야기이다. 나는 1955년 12월에 이 책을 발견한 후, 그리고 나의 성직자 친구들 몇 명에게 이 책을 소개한 이후에,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인 측면을 조사하기 위하여 여러 해를 보냈다. 다음과 같은 자료는 우리가 발견한 것들을 요약한 것이다.
우리는 시카고에 있는 어느 작은 무리가 이 문서들을 받았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그들의 지도자는 William S. Sadler(새들러) 박사였다. 새들러 박사는 시카고 대학의 대학원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매우 유명한 심리학자였다. 동시에 그는 거의 30년 동안 매코믹 신학교에서 목회 상담학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새들러 박사는, 1920년대 중반경에 여러 계층의 사람들로 구성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자기 집에 모여 심리학적인 주제와 의학적(醫學的)인 주제를 가지고 토론하였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이러한 토론이 여러 차례 계속되는 가운데, 그 토론회에 참석한 사람들과 계시자들 사이에서 접촉 위원회를 통해 대화가 이루어졌다. 훨씬 후에, 그 토론회의 회원들이 유란시아 재단을 설립하였고 “유란시아 서”를 출판하였다.
새들러 박사는 우리들이 그에게 질문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솔직하게 답변해 주었지만, 두 가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려고 하였는데: 그것은 유란시아 문서들을 형태화시키는 일에 사고 조율사들이 사용되었던 그 사람들 각자에 대한 이름과, 그 문서들이 출현한 독특한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새들러 박사는 자기들이 이러한 두 가지 문제에 관하여 비밀을 지키겠다는 서약을 하도록 요청받았다고 말하였다. 이러한 제약이 왜 그들에게 주어졌는지에 대하여 내가 물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은 이유들을 설명해 주었다:
1. “접촉을 이루었던 인격체의 신분을 말하지 않는 이유는, 어떤 인간 존재(어떤 인간 이름)도 “유란시아 서”에 관련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계시자들의 요청이다. 그들은 이 계시가 그 자신의 진술과 가르침의 토대 위에서 유지되기를 원한다. 그들은 장래의 후손들이 모든 인간적 관련성으로부터 독립되어--그들은 사도 베드로, 사도 바울, 루터, 칼빈, 또는 웨슬리 같은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이 책을 접하게 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책에는 그 책이 존재하게 한 발행인의 어떤 이름이나 표시도 내포하지 않고 있다.
2. “유란시아 문서들이 나타나게 된 데에는 어떤 인간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현상이 어떻게 발생되었는지를 정말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계시가 어떻게 하여 영어로 씌어져서 나타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추적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매우 많이 있다. 이 계시가 이루어진 데에 사용된 방법들과 기술에 대하여 정말로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는 아무도 만족시킬 수 없는데, 거기에는 추적이 불가능한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성직자들로 구성된 우리들은 “유란시아 서”가 물질화(物質化) 되는 일에 어느 정도 개입되었던 개인들에 대한 참고 사항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1929년에 발간된 「정신의 악영향」이라는 새들러 박사의 책 부록에서 발견되었다. 그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18년 동안에 걸친 연구와 면밀한 조사에도 불구하고 이 메시지들의 심리학적 출처를 캐내는 일에 실패하였다. 나는 현재 나 자신이 처음 출발하였던 바로 그 지점에 와 있음을 발견한다. 정신분석과 최면술 그리고 면밀한 비교 분석으로도, 이 사람들 각자에게 주어진 씌어진 메시지 또는 말로 들은 메시지가 그들의 정신 속에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밝혀내지 못하였다. 이 사람들을 통하여 주어진 자료들 대부분은 그들의 사고방식과 그들이 배워왔던 방법 그리고 그들의 전체적인 사상(思想)과 매우 상반되는 것이었다. 우리가 받은 그 자료들 대부분은, 어떻게 하여 그것들이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도저히 밝혀낼 수 없었다. 그 철학적 내용은 매우 새로운 것이었고, 그것의 대부분이 인간에 의해 전에 표현된 것을 거의 발견할 수 없다.” (P.383)
새들러 박사는 이러한 현상을 조사하면서, 가짜 매개체(medium)와 가짜 심령술을 밝혀내는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였던 유명한 예술가 하워드 써스톤(Howard
Thurston) 같은 사람들에게 상담을 하였다. 또한 그는 허버트 윌킨스(Hubert Wilkens)와 같은, 심리적 현상을 조사하는 일에 종사하는 연구가와 잘 알려진 과학자들과도 논의하였다. 그들은 이 사람들과 관계된 그 현상이 자동 기록, 정신감응(telepathy), 투시력, 황홀경, 영매(靈媒), 또는 혼령(魂靈) 인격체 등과 같은 다른 형태의 심리학적 현상으로 분류할 수 없다는 데 동의하였다.
1948년 5월에, 성직자들로 구성된 우리들은 “유란시아 서”의 기원에 대해 토의하기 위하여 새들러 박사를 만났다. 그는 우리들에게 무의식 세계와 심리적 행동들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분야들을 기록한 서류를 건네 주었다. 그 밑에 적혀 있는 참고 사항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유란시아 서”가 영어로 주어진 방법은 위에 있는 주변적 의식 현상들 중 어떤 것과도 비슷하거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유란시아 문서들이 출현한 방법이 초의식적(superconscious)인 어떤 형태와 관련되어 있다고 믿었다. 새들러 박사는 어떻게 하여 그러한 물질화(物質化)가 이루어졌는지를 알지 못한다고 나에게 여러 번 이야기하였다. 그는 “유란시아 서”의 기원에 대해 알려진 거의 모든 것들이 그 책 속에서 발견될 수 있다고 말하였다.
1939년에, 계시자들은 그 토론회의 지도자들에게 매주 수요일 저녁마다 모여서 유란시아 문서들을 진지하고도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할 사람들을 모으라고 요청하였다. 70명의 사람들이 자원하였고 그들은 “70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 70인은 “유란시아 서”가 출판될 때까지 그들의 지도자들과 계시자들로부터 지시를 받음으로써 훈련을 받았다. “유란시아 서”의 내용을 전파하는 일에 있어서 방송이나 무분별한 방법 또는 혁신적인 어떤 방법들의 위험성이 강조되었다.
“유란시아 서”의 출판을 준비하면서, 새들러 박사와 빌 새들러는 한 편의 소개서를 작성하였다. 서두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잘 기록하였더라도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라고--“촛불로 태양을 밝힐 수는 없듯이--” 말하였다. 그들은 확신하기를, 적당한 때가 되면 소개서가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이 머리말(Forward)을 받게 되었을 때, 새들러 박사는 자신들이 만든 소개서가 타당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튼 그들은 그 책의 “차례”를 구성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빌 새들러가 제목들과 각 단원의 제목들, 그리고 그 책의 개요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여러 부분들을 정리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차례”가 완성되었다. 접촉 위원회의 새들러 박사를 비롯한 다른 구성원들은 이 책을 쓰는 데 있어서 어떤 인간도 개입되지 않았음을 확신하였다. 접촉 위원회의 일원이 아닌 어떤 사람이 그 문서들 중의 하나를 “개선하자”고 제안하였지만, 그 책이 인간에 의해 첨가되는 것은 절대적으로 금지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 문서의 내용이 계시자들에 의해 주어진 그대로 출판될 수 있도록 모든 예방조치가 취해졌다.
여러 해 동안 공부를 한 후에 그들은 그 책을 출판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게 되었다. 그들은 영적인 진리의 확대된 제시를 많은 사람이 환영하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이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다. 다섯 번째의 시대적 계시는 우리 사회 속에 서서히 뿌리를 내리게 될 진보적인 현상으로 주어졌다.
내용에 의한 판단
“유란시아 서”의 기원에 관계된 사건들은 진리 또는 영적인 진실성에 대한 증명과 전혀 관계가 없다. 당신들은 그 책의 내용과 그 책이 맺게 될 열매로 판단을 해야만 한다. “유란시아 서”의 내용은 자기-입증과 역사적-철학적 일관성을 놀라울 정도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최종적인 분석에 있어서는, 내주(內住)하는 하나님의 영이, 이 책의 내용을 판단해야만 할 궁극적인 실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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